이 성의 화산문고본(李聖儀 華山文庫本)
총 517종 1,857책의 고전자료인 화산문고본은 주로 조선조후기의 귀중한 활자본이 망라되어 있어 이채롭다.
이것은 오랜 교섭 끝에 Columbia대학에서 60년대 후반에 구입한 고전자료들이다. 이성의씨는 일제시대부터 화산서림(華山書林)이란 고서점을 경영하여 고전자료에 대한 안목이 높고 경험이 풍부한 분이다. 그는 고서사(古書肆)의 경영이 생업이었지만, 결코 상리(商利)에만 집착하지 않고 우리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여겨 초간(初刊) 또는 선본(善本)과 오래된 희귀본(稀貴本)이라면 별도로 간직하여 소중하게 보관했다. 그러던 중 1965년 6월 졸지에 타계하였는데, 그 뒤 가족들이 그 문고본의 처리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를 미국에 있는 한국학관계 대학으로 처분할 것을 논의하고 민원서를 문교부에 제출했었다. 이를 접수한 문교부는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위원회로 하여금 그 여부를 심사하도록 지시했고, 그에 따라 학계 각 분야의 인사 10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사하였다. 그 결과 인조 14년(1636)에 일어난 병자호란(丙子胡亂) 이전의 전적(典籍)은 희관본(稀觀本) 또는 귀중본(貴重本)에 해당되므로 국외반출이 불가능하고 그 이후의 간인본(刊印 本)과 필사본(筆寫本)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 문고본의 일부가 Columbia대학으로 반출되어 그 종수와 내용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몇 해가 흐른 1962년에 그 문고본의 나머지 전부가 고려대학교도서관(高麗大學校圖書館)으로 기증되었는데, 이 때 그 목록을 보고 비로소 이 곳 Columbia C.V. Starr East Asian Library으로 반출된 장서의 규모와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C.V. Starr East Asian Library에는 이성의(李聖儀) 화산문고본(華山文庫本)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1930년대에 수집하여 그간 정리해온 책 중에서 가려낸 선본(善本)을 비롯하여 1968년 인사동(仁寺洞) 고서사에서 구입해온 고서와 하바드대학 Yenching도서관에서 구입한 복본고서(複本古書)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총수는 700여종 2,275책에 이른다. 그리고 우리의 신소설 155종도 소장되어있다.
주제별로 살펴보면 경부(經部) 52종 198책, 사부(史部) 230종 651책, 자부(子部) 72종 192책, 집부(集部) 308종 1,197책이며, 그 종수를 판종별로 구분하면 활자본(活字本) 604종, 목판본(木版本) 46종, 필사본(筆寫本) 12 종이다. 활자본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으며 이를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I.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 422 종
- 초주갑인자본 1 종
- 갑진자본 2 종
- 병진자본 1 종
- 무오자본 1 종
- 무신자본 63 종
- 현종실록자본 18 종
- 초주한구자본 12 종
- 재주한구자본 7 종
- 전기교서관인서체자본 9 종
- 후기교서관인서체자본 72 종
II. 원종자본 1 종
- 율곡전서자본 1 종
- 임진자본 21 종
- 정유자본 32 종
- 초주정리자본 11 종
- 재주정리자본 17 종
- 전사자본 59 종
- 정리자체철활자본 15 종
- 필서체철활자본 4 종
- 신연활자본 75 종
III. 목활자본(木活字本) 176 종
- 교서관필서체자본 2 종
- 경서정음자본 1 종
- 방홍무정운자본 1 종
- 기영필서체자본 1 종
- 생생자본 3 종
- 춘추강자본 1 종
- 금릉취진자본 3 종
- 보광사자본 1 종
- 학부목활자본 5 종
- 민간목활자본 158 종
IV. 도활자본(陶活字本) 4 종
V. 전포활자본(傳匏活字本) 2 종
VI. 계 604 종
위의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에 인출된 초주갑인자본(初鑄甲寅字本), 갑진자본(甲辰字本), 병자자본(丙子子本)이 약간 들어 있는데, 이것은 인사동의 다른 고서사(古書肆)로 흘러 나온 화산문고본(華山文庫本)을 1968년에 별도로 구입해 온 것이 라 한다.
초주갑인자는 세종(世宗)16년(1434)에 주조한 동활자이며 본 도서관 소장본으로〈중종-명종 연간에 찍은 <상설고문진보대전 (詳說古文眞寶大全)> 후집(後集) 제 4-5권 1책이 있다. 갑진자는 성종15년(1484)에 주조한 동활자로서 크기가 아주 작으면서도 글자체가 해정한데, 본 도서관 소장본에는 초기에 정교롭게 찍은 <찬주분류사시(纂註分類社詩)> 제 3-5권 1책과 다소 후인(後印)한 <대학연의(大學衍義)> 제 9-43권 9책이 있다. 병자자는 중종11년(1516)에 주조도감을 설치하고 주조하던 중 심한 한발로 중지되었다가 동왕14년(1519)에 다시 주조한 동활자인데, 본 도서관 소장에는 <문원영화(文苑英華)> 제 331-333권 1책이 있으며, 역시 초기에 인출하여 인쇄가 매우 정교하다. 이렇듯 임진왜란 이전의 귀중한 활자본이 약간 들어 있지만,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거의 전부가 병자호란 이후에 찍은 활자본인 것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그리고 활자본과 관련해서 또한 특기할 것은 토자(土字)로 찍었다는 기록이 명시된 영조(英祖)13년(1737) 인출의 도활자본(陶活字本) <동명선생집(東溟先生集)> 제 1-10권 7책이 새로 발굴된 점이다. 이것으로 인해 종래 구구했던 전도활자본(傳陶活字本)과 전포활자본(傳匏活字本) 그리고 목활자본(木活字本)의 식별이 한층 가능해진 점은 이번에 얻은 큰 수확이라 하겠다. 목판본 중에는 조선조에서 15세기 후기에 번각(蒜刻)한 것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 9-10권 1책이 들어 있어 주목케 한다. 이 <용비어천가>의 판종(版種)을 국내외의 소장본 제 6-7권 1책뿐임을 확인하였다. 국내외에 간직되고 있는 그 밖의 목판본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번각본(蒜刻本)들이다. 이런 점에서 동아도서관 소장본의 전래가치(傳來價値)가 한결 돋보인다.